'엄마는 왜 나를 떠났을까?'
어느 날, 엄마가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책상 위에는 손때 묻은 작은 노트 한 권과 낡은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채 편지를 펼쳤다.
"우리 딸, 엄마는 잠깐 여행을 다녀오려고 해.
너를 만나기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거든.
이제는 좀 쉬어도 될 것 같아서, 나를 찾지 말고 기다려줘.
너는 이제 엄마 없이도 잘할 수 있는 아이니까.
사랑해.
엄마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여행을 간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엄마는 한 번도 나를 두고 떠난 적이 없었다.
엄마의 삶은 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으니까.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반찬통이 텅 비어 있었다.
엄마가 떠나기 전날까지 채워두던 밥상이 사라진 것이 이상했다.
세탁기 안에도 엄마의 옷이 없었다.
정말 떠난 걸까?
엄마가?
나는 노트를 펼쳤다.
거기엔 엄마의 글씨로 적힌 낯선 단어들이 가득했다.
"바람의 냄새"
"바닷가에서 본 아이의 웃음"
"혼자 마시는 커피"
"내가 사라지면 딸은 어떤 얼굴을 할까?"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엄마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걸까.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걸까.
나는 엄마를 찾으러 나섰다.
엄마가 처음 사라졌던 날부터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엄마 여기 있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어느 바닷가 카페 주인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그곳으로 향했다.
카페 구석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오랜만에 본 내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왔구나."
"엄마,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냥...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었어.
엄마 말고, 그냥 나로서."
나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기 싫었다.
엄마는 내 곁에서 평생 엄마로 남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미안해, 엄마를 찾으러 오게 해서."
"...엄마는 이제 다시 돌아오는 거야?"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엔 네가 돌아가야 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엄마는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너도 알았으면 해.
엄마도 한 사람이야.
한 번쯤은 나로 살아보고 싶어."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손이 따뜻했지만, 더 이상 내 곁을 지켜주던 그 손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엄마는 내게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붙잡지 않았다.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손글씨로 적힌 짧은 한 줄.
"이제야 내가 나를 찾은 것 같아.
우리 딸, 너도 너의 삶을 살아."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단순히 ‘엄마’가 아니라,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린 ‘자신’을 찾아 떠난 거라는 걸.
나는 그 엽서를 가만히 쥐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엄마 없이도 잘 살아야겠다고.
아니, 엄마가 바란 것처럼,
이제는 나도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