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우리가 처음 마주한 순간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소개로 연락만 주고받던 그와 7년 만에 실제로 만났다.
그날의 우리, 첫눈에 서로에게 빠졌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평범한 스물셋.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차근차근 잡아가던 스물넷.
평범했던 일상이 그의 등장으로 영화처럼 달라졌다.
그는 언제나 나를 데려다 주고, 힘들 일에 앞장서 해결해준 사람이었다.
나는 늘 그랬던 사람이 없었기에, 그 작은 배려가 너무 컸다.
그는 데이트할 장소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나를 웃게 했다.
처음 함께 간 제주도 여행은 아직도 선명하다.
해바라기를 보고 나와 차 안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사고 날 뻔했던 순간조차도 웃음으로 물들었던 우리.
유채꽃밭 한가운데에서 나를 안아 빙글빙글 돌던 그 순간의 공기와 웃음소리가 어제처럼 기억난다.
그의 곁에 있으면 매일 웃고, 두려울 게 없었다. 꿈만 같던 날들, 정말 이대로만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Chapter 2. 멀어지기 시작한 마음
하지만 현실은 꿈과 달랐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나는 본가 쪽에 좋은 기회로 회사에 취직하게 됐다.
그곳은 그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반이나 떨어진 거리였다.
그는 가지 말라고 했다.
“내가 널 먹여 살릴게. 그냥 여기서 같이 살자.” 그 말의 무게를 알기에 나는 더 이상 그의 곁에 머물 수 없었다.
내 꿈을 좇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짐을 싸서 떠났다.
이사를 하던 날,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본가까지 데려다주었다.
집 앞에 도착해도 한마디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그는 이별을 통보했다.
“몸이 멀어지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붙잡기 싫어서 더이상 말하지 않았어. 헤어지자. 미안해.”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우리가, 거리에 의해 이렇게 멀어지는게 두려웠다고 했다.
Chapter 3. 이별 후에도 남아있던 감정들
이별은 고통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매일 깨달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별 후에도 매일 나를 찾아왔다.
내가 준 물건을 하나씩 돌려받겠다며 먼 거리를 달려오는 그의 얼굴이 참 밉고도 아팠다.
나는 결국 그의 물건을 한꺼번에 돌려줬다.
“다 가져가. 다시는 나한테 오지 마.” 그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볼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갔고, 나는 그의 번호를 지우고 차단했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며칠에 한 번씩 그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늘 밝게 웃고 있었다.
깨어나면 어김없이 허전함과 눈물이 밀려왔다.
Chapter 4. 재회의 기로에서
5년 후, 새로운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는 한 번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났다.
그는 우리가 헤어진 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물건을 받으러 온 건 핑계였다고, 사실은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너무 단호했기에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그 또한 여전히 꿈에 내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본인 또한, 태어나서 가장 사랑했던 여자이기에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결국 고개를 저었다.
너무 사랑했던 사람이라 다시 잃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았다.
행복했던 추억으로 묻고 싶었다.나는 그를 다시 떠나보냈다.
Chapter 5. 시간이 흘러도 남아있는 것들
지금도 가끔 그를 떠올린다. 그와 함께했던 20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간이었으니까.
그는 지금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나는 늘 그의 행복을 빌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나에겐 찬란한 20대가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다시 만나지 않았던 건 서로를 위한 마지막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기억은 이제 내 마음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가끔 묻는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용감했다면, 우린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답은 필요 없다.
이미 나는 그 시절로 충분히 행복했으니까.